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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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501015-01-000585 백련사

백련사 벽화

안수정등(岸樹井藤)

 



끝없이 황량한 벌판에 한 나그네가 가고 있었다.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고 길도 없는 벌판이었다. 그러한 나그네 앞에 한 마리의 사나운 사자가 나타나 달려왔다. 산더미 같이 큰 사자가 단번에 밟아 죽일 기세로 달려오자 나그네는 살 구멍을 찾아 달아났다. 겁에 질려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치던 나그네는 다행히도 한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침 그 우물은 빈 우물이었고 그 우물가에는 한 줄기의 넝쿨이 우물 안으로 내리 뻗어 있었다. 사자에게 쫓겨 어쩔 줄 모르던 그 나그네는 급히 나무뿌리를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 매달려 몸을 숨겼다. 

당장에라도 밟아 죽일 듯이 뒤쫓아왔던 사자는 좁은 우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기에 우물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사자로부터 몸을 피하게 된 나그네는 나무뿌리에 매달려 우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물 속을 둘러본 나그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윗쪽을 쳐다보니 검은 쥐, 흰 쥐 두 마리가 넝쿨의 윗부분을 갉아먹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 나무뿌리가 끊어져 밑바닥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게다가 우물 안 벽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나그네를 향해 독을 뿜으며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고, 우물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룡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그네가 급히 우물 밖으로 나가려고 위를 쳐다보니 사자는 보이지 않고 우물 입구에서 자욱한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튕겨 오르는 게 보였다. 들불이 일어나 휩쓸고 있는 것이었다. 위로도, 아래로도, 옆으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나그네는 한 줄기 넝쿨에 의지해 불안에 떨며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다섯 방울의 꿀물이 나그네의 입술에 똑똑 떨어져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그네는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잊고서 꿀물이 떨어진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벌집이 있었다. 나그네는 입을 벌린 채 꿀물이 떨어지기를 바랐다. 

바로 그때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꿀벌들이 놀라서 날아다니며 나그네의 얼굴과 머리를 쏘았다. 나무뿌리를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밑으로 떨어져 독룡에게 먹히고 말 것이며, 벌을 피해 머리를 휘젓고 몸을 뒤틀다가는 네 마리의 독사에게 물릴 것이다. 성난 사자와 들불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나그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佛說醫輸經)>에 나오는 것으로, 인간의 인생을 비유로서 보여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그네의 처지는 바로 우리들 인생이다. 황량한 벌판은 무명의 긴 밤이며, 사자는 무상(無常)에, 우물은 험란한 이 세상에, 한 줄기 넝쿨은 생명에, 검은 쥐와 흰 쥐는 낮과 밤에, 쥐가 넝쿨을 갉아먹는 것은 순간순간 늙어가는 것에,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 육신을 구성하는 사대(四大,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요소)에, 다섯 방울의 꿀은 오욕(五欲, 재물, 애욕, 음식, 명예, 수면의 다섯 가지 욕망)에, 벌은 삿된 생각에, 들불은 노병(老病)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은 삶의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릇된 생활에 흠뻑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그것은 마치 우물 속의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잊고 꿀물을 빨아먹는 데 정신이 팔린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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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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