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백련사

TEL. 061-432-0837

우체국 501015-01-000585 백련사

차와 동백이 아름다운


백련사 차(茶)이야기

 

차는 타닌을 비롯해 인체 건강에 이로운 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물리적 요인과 더불어 이를 만들어서 마시는 과정 자체를 ‘명선(茗禪‘)’, ‘다선일여(茶禪一如)’라고 할 만큼 불교적 수행과 동일시되어 왔다. 때문에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시대 때에는 전국 각지에 ‘다방(茶房)’이 있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었다.
그러다 조선조 초기에는 잠시 주춤했다가 중기 이후부터 다시 성행했고, 조선조 말기부터 차는 건강과 심신수련의 대명사가 되었다.


백련사가 있는 강진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무위사와 월남사지가 있는 월출산 일대를 중심으로 차가 재배되고 있었다. 근래 월남사지 지표 발굴조사에서 ‘차맷돌’이 발굴된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또 백련결사 당시에는 차가 스님들이 애호했던 수행의 방편이었다.
백련결사의 스님들이었던 정명국사 천인, 진정국사 천책, 무외국사 목암스님의 기록에는 차에 관한 시가 있다. 뒤로 이것은 조선조 초기의 대공덕주 효령대군과 행호선사에게 이어지고, 후기에는 소요대사 태능, 설봉대사 희정에게 이어졌다.

조선후기 차문화의 부흥에서 백련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와 지내던 때(1801-1818), 대흥사 강백을 지냈던 아암 혜장선사(兒巖 惠藏禪師)와의 나이와 종교를 초월한 교유는 차(茶山)를 매개로 한 것이다.


특히 조선조 차문화의 중흥조로 알려진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草衣禪師)는 아암 혜장선사의 소개로 다산초당에서 정약용 선생을 만나 차의 기능, 유래, 효능, 제작방법 등 여러 의견들을 나누고 이를 발전시켰다. 다산이 초의선사에게 차를 만들어 보내주길 권한 ‘걸명소(乞茗訴)’가 유명하다.
훗날 초의선사는 조선후기 차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서 귀양생활을 했을 때에 막역하게 교류했다. 모두 차를 매개로 한 교류였다. 또 혜장선사의 제자인 철경응언, 기어자굉, 침교법훈, 철선혜즙과 같은 스님들 역시 차와 더불어 다산과 교류했다.
 

지금은 백련사에 깃든 이런 역사적 전통을 잇기 위해 혜암스님의 문하로 다솔사의 효당 최범술스님께 차를 공부한 효서 여연(曉誓 如然)스님께서 차문화의 진작을 위해 노력중이다.

백련결사의 4대 맹주이셨던 진정국사 천책스님이 쓴 차시 ‘금장 대선사에게 드리다(寄金藏大禪師)’다.



 
 

 

고귀한 차는 몽정산에서 받았고

좋은 물 惠山에서 길었네

졸음 깨끗이 쓸어 물리치고

손님 맞아 한가함을 도모하오

감로는 털구멍에서 넘쳐나고

많은 바람 겨드랑 사이에서 풀무질하네

어찌 영약을 반드시 마시고야

어린아이 얼굴을 지탱할 수 있으리오

(진정국사, [湖山錄] 中)
 


아암 혜장스님 차시(茶詩)


幽棲盡日閉松門   사는 곳 온 종일 송문(松門)을 닫아 거니 

石泉依然栗里邨   돌샘은 변함없는 율리(栗里)의 마을일세. 

一塢雲中忘甲子   온 언덕 구름 속에 세월을 다 잊었고 

兩函經上度朝昏   두 상자의 경전 위로 아침 저녁 지나간다. 

竹間茶葉將舒舌   대숲 사이 차 잎은 장차 혀를 펴려하고 

墻外梅枝已斷魂   울 밖의 매화가지 이미 애를 끊누나. 

林下邇來成寂寞   숲 아래 가까이 와 적막함을 이루니 

禽啇志操有誰論   새가 지조 있음을 뉘 있어 논하리오. 

「진일(盡日)」





소나무로 얽어 세운 사립문은 온종일 닫혀 있다. 돌샘에서 퐁퐁 샘물이 솟는다.
언덕은 늘 구름에 잠겨 책력(冊曆)을 잊었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책상 위에 얹힌 두 상자의 경서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읽는 일 뿐이다. 5구에서 대숲 사이에 찻잎이 장차 혀를 펴려 한다고 했다. 매화 시절이니 일창일기의 작설이 이제 막 그 여린 혀를 펼칠 때다. 

다음 시는 「가리포 절제 김종환 공에게 주다(贈加里浦節制金公宗煥)」란 작품. 


旅館相逢破寂廖 여관에서 서로 만나 적료함 깨뜨리고 

繫舟灘石共逍遙 여울 바위 배를 매고 함께 소요 했었네. 

秋深古島山容瘦 가을 깊은 옛 섬에 산 모습 수척하고 

風積平湖水勢饒 바람 많은 평호에는 물의 형세 넉넉하다. 

已具茶湯遲半日 차탕(茶湯)을 갖춰 놓고 반 나절을 더디 놀다 

更將燈燭話中宵 다시금 등촉 밝혀 한밤까지 얘기하네. 

殘經見解元無實 잔경(殘經) 대한 견해는 애초에 실이 없어 

慚愧多年但問橋 여러 해를 가는 길만 묻고 있음 부끄럽다. 


가리포 첨사 김종환과 만나 포구의 가을 풍광을 바라보며 노닌 하루 일을 적은 내용이다.
5구에서 다탕(茶湯)을 갖춰 놓고 반나절을 더디 지나보낸 일을 말했다. 종일 고금도의 가을 산 풍경과 평호의 넘실대는 물을 보면서, 차도구를 갖춰놓고 잔경(殘經)에 대한 해석을 놓고 긴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우려내고 하는 동안 해는 어느새 기울어 깊은 밤중이 되었다. 두 사람은 어쩌면 끝도 없을 경전 이야기로 이렇게 또 밤을 지새울 눈치다. 

 






다음은 「장춘동 잡흥. 이사군 태승에게 드림(長春洞雜興呈李使君台升十二首)」12수 중 제 8수다. 이태승은 혜장이 다산과 함께 가장 가까이 지냈던 술친구였다. 혜장의 시명(詩名)이 서울까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이태승 때문이었고, 혜장이 술로 일찍 세상을 뜬 것도 그의 탓이 없지 않았다. 


金塘澗勢自瀠洄 금당포 물길 형세 감돌아 흘러드니 

芳草垂楊一洞開 수양버들 풀 욱은 곳 골짝 하나 열렸구나. 

春入雲山長不出 봄이 온 구름 산서 나올 줄을 모르는데 

水流人間定無回 인간으로 흐르는 물 돌아옴이 없구나. 

行持硯匣時濡筆 길 떠나도 연갑(硯匣) 지녀 때로 붓을 적셨고 

坐擁茶爐試畵灰 차 화로 끼고 앉아 재에 획을 긋곤 했네. 

昔與琴湖游此岸 예전에 금호(琴湖)와 함께 이 기슭에 놀러와 

幾年玄觀賞桃來 몇 년을 현관(玄觀)으로 도화 감상 왔었지. 




 


6구에 ‘다로(茶爐)’가 나온다. 장춘동은 해남 대흥사 어귀의 골짝이다.
바랑에 벼루갑을 넣어두고 틈틈이 시를 쓰고, 앉아서는 차화로를 끼고 앉아, 화로의 재 위에다 획을 긋는다. 

다시 「탁옹의 곤괘 육효의 시운에 삼가 화운하다(奉和籜翁坤卦六爻韻)」를 읽는다. 


嶮巇人世上 험난한 인간의 세상 위에는 

步步凜如霜 걸음마다 서리처럼 오싹하구나. 

置屋成三逕 집 지어 세 갈래 길 만들어 놓고 

安身著一方 몸 편안히 한 귀퉁이 부치어 있네. 

碧牕看古蹟 푸른 창엔 옛 유적 바라보이고 

幽巷詠新章 깊은 골목 새 노래를 읊조리노라. 

貝葉曾盈篋 패엽 불경 광주리를 가득 채웠고 

茶芽更貯囊 찻잎은 주머니에 담아 두었지. 

烟霞隨杖屨 안개 노을 내 걸음을 뒤따라오고 

風月滿衣裳 바람과 달 옷 위로 가득하구나. 

卽此爲身計 이것으로 몸 위하는 계책 삼으니 

何須羨綺黃 어이해 누런 비단 부러워하리. 




 


7.8구에 패엽에 쓴 불경은 광주리에 가득하고, 찻잎을 다시금 주머니에 담아 두었다는 언급이 있다.
불경을 읽다가 차를 달여 마시고, 안개 노을과 바람과 달을 벗삼아 지내는 무욕의 삶을 노래했다. 찻잎을 주머니에 담아 두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혜장의 차는 떡차가 아닌 산차였던 듯 하다. 

「산거잡흥(山居雜興)」 20수의 제 2수와 제 14수에도 차를 노래한 내용이 보인다. 


一簾山色靜中鮮 주렴 가득 산빛이 고요 속에 신선한데 

碧樹丹霞滿目姸 푸른 나무 붉은 노을 눈에 가득 곱구나. 

叮囑沙彌須䰞茗 사미를 시켜서 차를 끓여내게 하니 

枕頭原有地漿泉 머리맡에 원래부터 지장(地漿) 샘이 있다네. 


澹靄殘陽照上方 엷은 노을 남은 볕이 절집을 비추이니 

半含紅色半含黃 반쯤은 붉은 빛에 반쯤은 누런 빛. 

淸茶一椀唯吾分 맑은 차 한 사발이 다만 내 분수거니 

羶臭人間盡日忙 누린내 나는 세상 온 종일 바쁘구나. 





암자 위쪽으로 지장천(地漿泉)이 있다고 했으니, 좋은 샘물을 길어와 사미승을 시켜 차를 달여 마시는 전아한 운치를 말했다. 또 제 14수에서는 맑은 차 한 사발이 다만 내 분수라고 하여, 붉은 노을 지는 해를 보며 한 사발 맑은 차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 조촐한 삶을 예찬했다. 

마지막으로 『아암집』에 수록된 「화중봉낙은사(和中峰樂隱詞)」 16수 연작 중 제 3수. 


登嶺採茶 산마루 올라가 차를 따고서 

引水灌花 냇물을 끌어다 꽃에 물주네. 

忽回首山日已斜 문득 고개 돌려보면 해는 뉘엿해. 

幽菴出磬 그윽한 암자엔 풍경이 울고 

古樹有鴉 해묵은 나무엔 까마귀 있네. 

喜如此閒如此樂如此嘉 기쁘다 이처럼 한가롭고 즐겁고 아름다움이. 





 

산마루 비탈에서 햇차를 딴다. 대통으로 물을 끌어와 꽃밭에 물을 준다. 그러다 보면 하루해가 또 다 간다. 암자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잘 준비를 마치고 고목 나무 위에 모여 앉은 갈가마귀 떼. 모든 것이 넉넉하고 아름답다. 그는 이런 삶이 참 한가롭고 기쁘고 즐겁다고 담백하게 말한다. 다산을 통해 차를 깊이 알게 된 이후, 철 따라 차를 따서 만드는 것이 혜장의 일상이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아암의 친필 서첩으로 알려진 『아암필법(兒巖筆法)』에는 ‘필상다조(筆床茶竈)’니 ‘명완로향(茗椀爐香)’이니 하는 차관련 글귀가 적혀있다. 다만 글씨의 내용이 대부분 기존에 있던 글귀의 집구거나, 당나라 왕유(王維)와 조선 중기 양경우(梁慶遇)의 한시 등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옮겨 적은 것이 뒤섞여 있다. 글씨야 혜장의 것이라 하더라도 시 자체는 혜장의 것이 아니다. 

이상 새로 공개된 『연파잉고』를 중심으로, 혜장의 알려지지 않았던 차시를 소개하고 감상했다. 이들 차시는 채다와 제다, 그리고 차 끓이고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생활 속에 녹여 즐길 줄 알았던 혜장의 차생활을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대숲 차를 으뜸으로 꼽는다든지, 차게 마시면 안된다거나, 차의 치병과 각성 효과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점, 은병과 석정(石鼎) 등의 다구를 구비하고 있었고, 샘물을 하루 밤 재워 차를 끓인다거나, 차를 덖어 볕에 말려 주머니 속에 담아 두고 마시는 차 보관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는 점 등은 이번에 전혀 새롭게 확인된 사실이다. 




 

一簾山色靜中鮮

碧樹丹霞滿目姸

叮囑沙彌須煮茗

枕頭原有地漿泉

 

주렴에 어린 산노을 고요하여 더욱 애틋하고

푸른 숲 붉은 노을 눈에 가득 고운데

어린 사미 불러 차 끓여라 이르고 보니

배겟머리에 맑은 약수(지장천)가 본래 있구나


아암 혜장






백련사 동백(冬柏)숲

 

백련결사와 더불어 백련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동백숲이다.
동백은 여수 오동도, 광양 옥룡사, 장흥 천관산, 고창 선운사 등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의 섬과 연안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백련사는 그 중심지역이다. 예로부터 동백은 따뜻한 ‘남국’의 이미지를 품고 있기 때문에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백련사 동백숲은 화재로부터 사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려 말 원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할 때 조성했는데, 1만평의 부지에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 남방 수종의 나무들과 섞여 8,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차나무 역시 동백나무과에 속하니 두 나무의 연관성을 따로 떼어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은 지역마다 수종의 차이가 있다. 그중 백련사의 동백나무는 다른 지역의 그것들과는 달리 잔가지가 많고, 잎이 작고 색깔이 진하며, 꽃의 크기 역시 다른 지역의 것들보다 더 작다. 꽃은 11월 말부터 듬성듬성 피우기 시작해서 겨우 내내 피어나다가 3월 말경에 만개하며, 4월에는 땅 위에 떨어져 다시 한 번 핀다.

백련사 서쪽 능선을 따라 나 있는 오솔길이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인데, 동백숲은 주로 그쪽 방향에 큰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름 20-30cm에 키 5-7m 안팎의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서 그 안에 들어서면 대낮인데도 어두울 정도다. 추운 겨울날에도 짙은 동백잎과 흰 눈 속에 함초롱이 얼굴을 내미는 백련사 동백꽃은 백련결사 이야기와 더불어 고려시대 때에도 개경 유생들이 선망하던 것이었다.  
 




 

또 이 숲속 군데군데에 승탑들이 있는데, 월인당(月引堂) 외에는 명문이 없어서 주인을 알 수가 없다. 겨우 내내 꽃을 피웠다가 4월에 이르러 한꺼번에 와락 땅에 떨어져 바닥에 펼쳐진다. 

이 동백나무 숲을 지나 행호토성을 넘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이 있고, 석름봉 쪽 사찰 뒤편에는 수백년 전부터 자생해온 야생차가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꾳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볼 참인가. 

 

제16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 고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