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에 풍간이라는 이상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키가 7척에 달하고 더벅머리가 눈썹까지 길게 내려오며 늘 다 떨어진 베옷을 입고 다녔다. 누가 불법이 뭐냐고 물으면 “형편대로!(隨時)”라고만 답할 뿐 일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큰 호랑이를 타고 절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으나 그는 태연히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그는 보통 사람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존중해 마지않았다.
어느 날 풍간 스님은 적성 밖을 지나다가 길가에 버려진 아이를 보았다. 스님은 이 아이들 천태산 국청사에 맡기고서 길러달라고 부탁했다. 아이의 이름은 주워왔다는 뜻에서 ‘습득’이라 했다. 국정사의 주지 스님은 습득에게 부처님 전에 향 피우는 일을 시켰다. 하루는 스님이 법당 앞을 지나는데 법당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
스님이 이상해서 법당 문을 열어보니 습득이 부처님 턱 밑에 앉아 공양 올린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부처 입에 갖다대고는 자기가 먹으면서 연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화가 난 스님은 습득을 강등시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게 했다.
어느날 고두밥을 쪄서 멍석에 말리는데, 새들이 와서 먹을까봐 습득에게 이를 지키라고 했다. 습득은 고두밥을 지키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들이 날아와서 고두밥을 모두 먹어버린 뒤였다. 습득은 막대기를 들고는 옆에 있는 사천왕에게 달려가서 힘껏 사천왕을 후려쳤다.
“고두밥을 먹는 새도 못 지키는 주제에 감히 어찌 절을 지키겠는가!”
그때 주지 스님의 꿈에 사천왕이 나타나 습득이가 때려서 아파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스님이 깜짝 놀라 사천왕에게 달려가 보니 습득이가 계속 사천왕을 때리고 있었다. 습득은 부엌에서 대중이 먹고 남은 밥을 얻은 후 대통에 넣어 한산과 어울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없이 하늘을 보고 웃기도 하고 큰소리를 지르고 미친 짓을 하면서도 입에서는 모두 불교의 이치에 맞는 말만 나왔다.
한편 여구륜이라는 벼슬아치가 이 고을의 자사로 부임했는데, 풍간 스님을 찾아가 뵙기를 청하자 스님이 굳이 사양하며 말씀하셨다.
“나보다는 문수, 보현께 물어보시오.”
“두 보살께서는 어디에 계시온지?”
“국청사에서 불 때주고 그릇 씻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자사는 예물을 갖춘 후 국청사로 한사와 습득을 찾아갔다. 때마침 한산과 습득은 화로를 끼고 앉아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가까이 간 자사가 절을 올리자 무턱대고 꾸짖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스님이 깜짝 놀라며 “대관께서 어찌 미치광이들에게 절을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한산이 자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풍간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군. 풍간이 아미타불인줄 모르고 우릴 찾으면 뭘하나?”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선 뒤 다시 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구륜은 못내 아쉬워 옷과 약 등의 예물을 갖추고 한암굴로 다시 찾아갔다. 예배를 올리고 말씀을 기다리는데 “도적놈아! 도적놈아!”하는 말을 남기고 한산과 습득이 굴속으로 들어가자 돌문이 저절로 닫혔다. 이윽고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각각 노력하라”라는 말이 들리고는 돌문은 완전히 닫혀버렸다.
여구륜은 성인을 친견하고도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섭섭히 여기며, 숲속의 나뭇잎이나 석벽, 혹은 촌락의 벽 등에 써놓은 세 분의 시 약 300수를 모아 책을 엮었다. 이 시집은 <한산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