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불교의 대성자로서 추앙되고 있는 원효 스님은 압량군의 북쪽, 율곡 사라수 아래서 태어나서 29세에 황룡사로 출가하셨다. 그때 당나라에서는 경·율·론에 통달하여 삼장법사가 된 현장 스님이 29세에 큰 뜻을 세워 17년 만에 서역(인도)의 고승 대덕들을 찾아 불법과 학문을 연구하고 당나라로 돌아와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세상에 널리 펴졌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동방의 여러 나라 스님들은 현장 스님에게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를 찾아갔다.
신라의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도 함께 당 유학길에 나섰다. 어느 날 해가 저문 뒤 인가가 끊긴 산중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두 스님은 바람을 피해 무덤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한밤중 원효 스님은 심한 갈증을 느껴 눈을 뜨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 속에서 바가지 같은 것에 물이 고여 있기에 그 물을 마셨는데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난 스님은 간밤에 자신의 갈증을 풀어준 그릇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릇이라고 여겼던 것은 인간의 해골이었고, 그 물은 빗물이 고여 썩은 것이었다. 스님은 불현듯 배를 잡고 오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깨달음이 왔다. 간밤에 마셨던 물이 썩은 빗물인 줄 모르고 마실 때는 달콤하고 감미로왔지만, 아침에 일어나 해골 물인 줄 알고 나서는 온갖 추한 생각이 나면서 구역질이 나지 않았는가. 원효 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게송으로 읊었다.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觸身不二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別法
胡用別求
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도 없는 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삼계가 모두 마음 때문이라
어찌 나를 속였으리요.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없으니
어찌 따로 진리를 구하랴.
밤새 원효 스님 곁에서 누워 자고 있던 의상 스님은 일어나 당나라까지 먼 길을 다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아무런 채비를 하지 않는 원효 스님을 보았다.
“스님은 왜 길 떠날 생각을 않으십니까?”
“우리가 당나라 유학길을 떠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입니까?”
“그야 도를 구하기 위함이지요.”
“그럼 이미 도를 구했다면 더 이상 갈 필요가 없겠지요.”
원효 스님은 다시 신라로 돌아와 열반 때까지 그때 깨달은 것들을 설파하고 방대한 저술 활동을 벌이며 불법을 전파해나가셨다. 원효 스님의 1000여 권 저서 중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240여 권인데, 스님의 중심 사상이 담긴 <십문화쟁론>은 오래된 법보로서 <대승기신론>과 더불어 불교인들이 공부해야 할 명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