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가 스님은 중국 낙양 무뢰 사람으로 어릴 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다.
신광은 출가 전부터 많은 책을 두루 읽어 학덕이 뛰어난 데다 출가 후에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수행에 전념했고, 32세부터는 향산에 돌아와 8년 동안 좌선했다. 그리하여 자주 오묘한 이치를 이야기했으나 마음의 편안함을 얻지는 못한 신광은 탄식하며 말했다.
“유교와 도교의 가르침은 법도가 여리고 깊은 이치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근자에 멀리서 오신 덕 높은 스님이 소림굴에 계시다 하니, 그분을 찾아가 물으면 의심한 바가 풀려 깊은 진리를 얻으리라.”
그때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대사는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벽을 향하고 앉아서 전법할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광은 자기의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일념에서 달마대사를 친견하러 나아갔으나, 스님은 항상 벽을 향하고 계셔서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신광은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계속 토굴 앞에 머물면서 스스로 자책했다.
“옛 사람은 도를 구하기 위해 혈맥을 잘라 굶주려 죽어가는 이를 구했고, 낭떠러지에서 몸을 날려 굶주린 호랑이를 살려주었다. 옛날에도 오히려 이 같이 하였거늘 나는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그날 밤 하늘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광은 날이 밝아 쌓인 눈이 허리를 넘을 때까지 돌장승처럼 서 있었다. 달마대사는 그때서야 눈 속에 서 있는 신광을 보고 저으기 놀라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네가 눈 속에 오래 서서 뭘 구하려고 하느냐?”
신광은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했다.
“원컨대 스님께서는 감로문을 열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소서.”
이에 달마대사는 신광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모든 부처님의 위 없는 도는 오랜 겁 동안에 정진하여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 이룬 것인데, 어찌 적은 덕과 지혜로서 그리고 경박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참다운 법을 구하려고 하는가? 한갓 수고로움만 더하여 괴로울 뿐이다.”
이 말을 들은 신광은 훌연히 허리에 차고 있던 섬뜩한 패도(칼)를 꺼내들어 자기의 오른팔을 잘랐다. 이때 떨어진 팔은 때가 아니게 피어난 파초 한 잎이 받아들었다.
달마대사는 신광의 이 같이 열렬한 구도의 마음을 보고서 그가 불도를 수행할 만한 큰 그릇임을 알아챘다.
“모든 부처님이 최초에 도를 구할 때에도 법을 위해 몸을 잊었는데, 네가 지금 팔을 끊어 내 앞에 내놓았으니 구함이 있으리라.”
달마대사는 신광의 입문을 허락하여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제자로 삼았다.
어느 날 혜가는 달마대상게 여쭈었다.
“불법의 지극한 도를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의 지극한 도는 다른 사람에게서 구할 수 없다”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겠다.”
혜가는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 마음을 깊이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혜가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망상을 끊어 없애서 철저히 무심해야만 비로소 참된 마음이 앞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걸림도 없고 얽매임도 없이 몸을 벗어나 기댐이 없어야 대해탈의 때가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로부터 법을 부촉받아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었다.
혜가 스님은 552년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하고 34년 동안 업도에 머물면서 설법하다가, 뒤에 관성현 광구사에서 <열반경>을 강하여 많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고 593년에 입적하시니 세수 10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