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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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이야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이 한권 소포로 왔다. 친한 친구가 트윗에 올린 짧은 메시지, 그리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틈틈이 적은 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서 보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예쁘게 만든 책이다.



 



 

그 친구와의 추억이 많다. 플로리다에서 살 때 Key West로 여행을 간적이 있다. 친구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나는 차를 몰고 미국의 최남단 땅 끝 항구에서 만났다.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보고 땅 끝 바다에서 그냥 말없이 해 저무는 풍경을 바라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바라다본 바다의 노을이 눈에 선하다. 뉴욕에서 함께 소임을 살 때는 단 둘이 센트럴파크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숲을 걷다가 자그마한 벤치에 멈춰서 샌드위치를 먹고 따뜻한 햇살 아래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없이 계속될 것 같은 시간이 흐르는 중에 우린 서로의 속마음을 많이 털어놓았다.
친구는 ‘만약에 간화선 수행이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겠다’ 고 말했다. 난 그 말에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수행자로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그 당연한 말이 행동하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만큼 인식의 폭이 넓어졌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인터넷상에서 종종 친구의 이름이 국제 간화선 세미나 발표자로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홀로 남모르는 미소를 짓곤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 속에는 짧지만 깊이 있는 사색과 고뇌의 흔적이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쉬운 언어로 수놓아져 있다. 

문득 책의 제목처럼 인간이 멈출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망상을 피워본다. 어떻게 보면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물질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죽음도 인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멈춘다는 표현에는 지금 이 순간을 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난 백련사에서 2박3일 남도기행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보고 느끼라’고 주문을 한다.

명상을 할 때뿐만 아니라 산을 오르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말을 삼가고 이 순간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정말 좋은 인연이 생기면 이 공부를 지극하게 해서 진리의 눈이 뜨이기를, 피안의 언덕에 오르기를 기원한다. 
그것도 간절히......


어떻게 보면 오래된 사찰이야 말로 멈추는 연습을 하기에는 정말 좋은 공간이다. 이른 새벽에 동백나무가 듬성듬성한 오솔길을 홀로 거닐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천관산 너머로 불붙는 새벽햇살에 불그스레 얼굴을 물들이는 숲하며 새들의 지저귐에 화답하는 나무의 숨결들, 뺨위를 서걱거리는 겨울바람의 속삭임, 우주의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건네는 찰나의 순간, 아름다움이 섬광처럼 찾아든다. 

그러면 끝내 고개를 돌리고, 나는 차마 더 이상 산책을 못하고 돌아와 방문을 닫는다. 그렇게 내 이른 새벽 산책은 항상 짧게 끝난다. 

하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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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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