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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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이야기

모든 이들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내게도 그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

혜민스님이 하는 마음 치유 법회에 우연히 참여를 하고서 과거의 무수한 기억들이 그렇게 마음 속 깊이 아픔으로 남아 있는 줄 처음 알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립학교였는데 3학년 때 교장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그 교장 선생님은 오시자마자 하루에 한 장씩 8절지에 깜지를 쓰게 했고 매주 월요일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 놓고 교련 훈시를 했다. 학교에서 소모임을 하고 있던 나는 4.19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깜지와 아침 훈시 등에 대한 부당함을 대자보로 적어 학교에 붙이기로 했다.

자취방에 모여 대자보를 쓰고 풀에 본드를 섞으면서 ‘이거 떼어내려면 고생 좀 하겠다’ 우스갯소리를 하며 친구들은 학교로 향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학교는 시끌벌쩍했다. 대자보 때문이 아니었다. 그 날 저녁 대자보를 붙이고 돌아가던 친구들이 경찰에게 붙잡힌 것이다. 학교에서는 일벌백계 한다며 세 명에게는 정학을 한명에게는 퇴학을 시킨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퇴학을 당하게 될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수업 중 담임선생님이 불러 한참을 나갔다 돌아온 친구는 선생님과 함께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왔다고 한다. 자퇴를 하면 내년에 복학을 할 수 있으니 퇴학보다는 자퇴를 하라고 선생님이 권유를 했는데 그 친구는 스스로 떳떳해서 자퇴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했던 모든 일을 홀로 끌어안고 퇴학을 당했다. 당당했던 친구는 퇴학조치를 당하고도 학교에 계속 나와 수업을 들었다. 주위에서는 얼마나 갈까 했지만 뜨거운 봄 5월이 지나고 여름방학 겨울이 끝날 때까지 학교를 다녔다.

선생님들은 그 친구를 투명인간처럼 대했고 맨 뒷자리 짝꿍도 없는 나무 의자와 책상이 그 친구의 차지였다. 우리는 졸업식장에 밀가루와 명예졸업장을 준비해 친구에게 선물했고 그렇게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은 끝을 맺었다.

 

20년이 지나서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눈물이 날줄 몰랐다. 출가를 하고 승려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인연을 떨쳤다고 생각했는데 내 가슴은 그것이 아픔인 줄도 모른 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수하게 재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중도, 간화선을 떠들면서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조차 보질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교지 편집장을 하던 나는 설문지를 만들었다. 깜지와 교련 훈시, 정학과 퇴학당한 친구들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조사였다. 각 반에 설문지를 돌리고 쉬고 있는데 학과장 선생님이 나를 데리러 왔다. 교무실로 간 나는 학과장 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았다.

1학년 때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맞았을지 모른다. 급히 병원으로 가 입술 12방을 꿰맸다.

 

다음 날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를 학교로 불렀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교장실을 나와서 아버지는 매점으로 가자며 나를 데리고서 우유와 빵을 사 주셨다. 말없이 우유와 빵을 먹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그 교장 선생님 정말 나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네.

그렇게 독백처럼 말씀을 흘리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처진 어깨가 그렇게 슬프게 보일 수가 없다. 그 기억을 떠오르니 내가 보름빵과 우유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마음치유법회에서 내 파트너로 대화를 했던 참가자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 그 아픔은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다. 그 아픔을 치유하지 않고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 치유란 그 아픔을 바로 보고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똑 같은 무게의 아픔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퇴학을 당한 친구도, 목욕탕에 가서 자퇴 이야기를 꺼내야 했던 담임선생님도, 나를 구해준 선생님도, 심지어는 학과장 선생님과 교장선생님도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생이다.

14일에 광주에서 혜민스님이 마음치유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좋은 기회이다.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은 중생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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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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